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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영경 | 2012.10.18 16:17 | 조회 8399

    "죄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았다"라는 제목으로 양천교회에서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저녁으로 예비 집회를 가졌다. 먼저 구역집회를 통해 그동안 교회와 멀어졌던 형제자매들과 또 새로 연결되신 분들, 낮으로 가판전도를 통해 심령들을 초청했고 몇몇 분들이 오셔서 말씀을 들으시면서 교제를 나누시고 돌아가셨다갑자기 추워진 가을 날씨 덕에 새로운 분이 오실까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심령들을 보내 주셨다.

     


     

    첫날 저녁 강사 이헌목 목사는 사사기 121~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눈과 내가 나를 보는 눈은 다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 이 땅에서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했다라고 하는 내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했다는 흐뭇함과 자신을 괜찮게 여기는 마음을 지적하셨다. 이미 예수님을 통해 인간이 하는 모든 것들을 끝내놓으셨는데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서 자기가 잘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천국에 갈수 있는 마음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정확한 소리를 내야 한다. 사람의 의에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의에 있느냐?

    사사기 12장에 나오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shibboleth이라는 정확한 소리를 내지 못해 결국 길르앗 사람들에게 shibboleth 이라고 발음해서 이날 사만 이천 명이나 되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길르앗 사람들이 들었을때는 다른 것처럼 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니까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고 내가 뭔가 착하게 살면서 예수님의 피도 섞었느냐 아니면 예수님의 피만 붙들고 있느냐의 구분을 정확히 해야 한다.

    내 마음의 구조도 내 의가 처리 되지 못하고 나오게 된다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의만 붙들고 있는가아니면 자기의 의와 함께 붙들고 있는가?

     


     

    둘째날 이헌목 목사는 창세기 41장의 말씀을 통해서 꿈을 꾼 바로왕의 주위에 지혜롭고 경험이 풍부한 많은 신하들이 있는데 감옥에 있었던 죄수였고, 타국인이었으며 죄질(?)도 나쁜 요셉을 어떻게 자기위에 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다. 바로왕은 자기가 꾼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가 아름답고 살진 암소를 잡아먹고 을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세약한 일곱 이삭이 삼키면서 그 꿈으로 말미암아 바로왕의 마음에 사망이 온 것이다. 그래서 각국에는 기근이 있었지만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땅에는 양식이 있었고 흉년을 건너갈 수 있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만 바로왕이 요셉을 총리로 세우는 것처럼 우리는 왜 예수님을 세우지 못하고 사느냐? 우리도 바로왕이 꿈을 꾼것처럼 날마다 그 꿈을 꾸어야 한다. 우리도 날마다 이런 꿈을 꾸어서 우리 마음에 예수님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우리속에 잘하려고 하는 마음, 자기를 세우려는 마음, 내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율법과 행위 아래 있는 우리의 마음에 사망이 와서 예수님만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가장 깨끗한 것, 인간의 가장 선한 것, 가장 의로운 것이라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하고 더러운 옷과 같은 그런 나 인데도 아직도 내가 할 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망이 오면 예수님을 세우는 것이 너무 쉽다 바로왕처럼....



    [구역집회를 통해 연결되신 염석암 씨]

     

    세쨋날 이헌목 목사는 마태복음 1239절 말씀과 164절의 동일한 요나의 표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 시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표적이 아닌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고 싶으시다. 마치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고 하셨던 여호와의 음성을 불순종하고 요나로 말미암아 요나가 탔던 배에 풍랑이 일며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에 풍랑이 그치고 그가 삼일 동안 고래의 뱃속에 있다가 회개함으로 니느웨 백성을 멸망에서 회개케 한 것처럼 이헌목 목사는 여호와의 음성을 불순종한 요나를 여호와의 음성을 불순종한 아담으로, 요나로 말미암았던 풍랑을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인 된 우리 인류에게 올수 밖에 없었던 병이나 문제나 불행으로, 삼일동안 고래의 뱃속에 있다가 나왔던 요나를 삼일 동안 무덤에 묻히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비교 하면서 말씀을 풀어주셨다. 예수님은 표적보다 풍랑 같은 죄가 어떻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표적은 내가 의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과 방법처럼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것이 가장 큰 표적인 것이다.

     


     [ 가판을 통해 연결되신 오인수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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